최근 우리지역 언론인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나누게 되는 이야기 중 하나는 '나꼼수' 이야기다. 26일 구속수감 예정인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에 대한 이야기부터 주진우, 김어준 등 등장인물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다음 편이 언제 올라올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 등을 주로 나눈다. 매주 600만명이 청취한다는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실감하게 된다. 그러면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전북판 나꼼수' 만들면 좋겠다"는 말이다.
'전북판 나꼼수', 왜 원하시나요?
'전북판 나꼼수' 전라북도의 시사, 경제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는꼼수다' 형태로 직설적으로 풀어낸다는 뜻일게다. 사람들이 '나꼼수'를 통해 느꼈던 배설욕구, 카타르시스 등을 전라북도 이야기를 통해 또다시 느껴보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왜 '전북판 나꼼수'를 원하는가? 전라북도에는 인구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일간지 수(13개)를 가지고 있고, 방송3사, 뉴스 통신사, 인터넷신문까지 대단히 많은 언론들이 있다. 다양한 소식들이 하루에도 수백여건씩 전해지고 있다. 그토록 많은 언론과 기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나꼼수'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걸까.
'나꼼수'는 얼마전 정봉주 전 의원이 '백지연의 끝장토론'에서 나온 바와 같이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탄생했다"고 말한 바 있다. 다양한 신문, 방송 등이 있지만 권력에 의해 장악당해 제대로 된 언론 구실을 못해 자기들이 '셀프로' 만들었다는 방송이 바로 '나꼼수'다. '나꼼수'의 탄생배경은 그 자체가 유명무실한 언론의 현주소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전북판 나꼼수'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래서 씁쓸하다. 수많은 언론에 대해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꼼수'가 사람들에게 주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나꼼수'에 열광하는 포인트는 다양하지만 정 전 의원의 말처럼 그 탄생배경과 인기의 정점에는 '언론의 부재'라고 하는, 가장 큰 문제의식이자 우울한 지점이 자리하고 있다.

'전북판 나꼼수'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아이러니한 사실은, '전북판 나꼼수' 운운하는 사람들이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는 대부분 현직 언론인들이라는 것이다. 언론인들이 아닌 경우라면 정치인이었다. 최근 내년 총선을 바라보는 어느 예비후보가 선거전략으로 '나꼼수 같은 것'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사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나꼼수'의 후광을 등에 업고 '한번 떠보고 싶다'는 발상이거나 지역언론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낸 것이거나, 둘 중 하나다.
지역언론인들의 '나꼼수' 타령은 지역언론에 대한 종사자 스스로의 부정적 인식 혹은 체념의 산물이다. 스스로가 몸담고 있는 언론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인정이다. 그들의 말 뜻을 좋게 해석하자면 제도권 언론, 혹은 공공재로서의 방송이나 지면을 가진 이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 배출(욕이나 비속어 사용)이나 즉흥성에 대한 '부러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꼼수'가 현재 언론의 역할과 활동의 미약함, 혹은 비신뢰성에 대한 냉소와 비판을 깔고 누리는 인기라는 점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본다면 언론인들에게 나꼼수는 '부러움'보다는 '씁쓸함'으로 다가와야 옳지 않나 싶다.
'전북판 나꼼수'가 설마 성공할까요?
또 하나 냉정하게 되새겨봐야 할 이야기는 그 프로그램의 성공여부다. 매력적인 캐릭터, 획기적인 콘텐츠 유통방식, 기성 언론을 뛰어넘는 정보력 등 '전북판 나꼼수'가 만들어진다면 응당 갖춰야 할 요소들은 너무나 많다. 그리고 어렵다.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건 누구라도 알테다.
문제는 그러한 것들을 갖춘다 할 지언정 '나꼼수'만큼 성공하긴 너무나 어렵다는 점이다.
첫째, 매력적인 이야깃거리가 없다. '나꼼수'가 성공한 가장 첫째 비결 중 하나는 '적'이 너무나 명확하다는 점이다. 그들의 '적'은 오로지 '가카'다. '가카헌정방송'을 지향하는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좋건 싫건 알고 있는 '가카'를 공동의 적으로 삼아 콘텐츠의 청취대상을 '전국민'으로 확대할 수 있었다. 특정 세력이나 정당이 아니다. 오로지 '반 가카연대'를 유지했기 때문에 광범위한 청취자 및 영향력 확보가 가능했다. 그러나 전북엔 공통의 적이라 할만한 대상이 없다. 단지 '수장'이란 이유만으로 도지사를 적으로 삼기엔 그 이유가 타당치 못하고, 전북의 여당이라 할 수 있는 민주당 소속 도지사를 공격해 인기를 얻기란 결코 쉽지 않다.
둘째, 사람들은 전북에 관심이 없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일지 모른다. 사람들은 대체로 전북에 대해 관심이 없는 편이다. 자신의 이해득실과 관련된 부분이라면 모를까. 굳이 팟캐스트를 검색하고, 찾아서 다운로드해 듣는 열성적인 행동을 할만큼의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싶다. 특히 '나꼼수'의 주요 청취자 계층은 2030세대들은 지금 자신의 거주지 시장, 도지사 이름도 제대로 모른다. 오히려 서울시장이나 대통령에게 훨씬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지역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을 높이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지만 단지 누군가를 '까는' 음원을 통해 그것이 해결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다.
'전북판 나꼼수'는 부끄러운 말
'전북판 나꼼수'만들자는 이들에게서 굳이 희망을 찾아보자면 적어도 그런 것이 필요할만큼 우리 언론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졌다는 점이다. 문제의식을 가졌으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 것이 옳다. 그러나 '나꼼수'는 아니다. 아류로 성공하는 것은 원조로 성공하는 것보다 열배쯤 힘들 뿐더러 열배쯤 나은 것을 내놓아야 가능하다. ('나꼼수' 성공이후 '나꼽살' '명품수다' '너는 꼼수다' 등이 연이어 실패하는 것을 보라)
'전북판 나꼼수'는 부끄러운 말이다. 언론 스스로에 대한 푸념이자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현실의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려 나서지 않는 소극적 태도다. 새로운 것을 찾자. 그러나 '나꼼수' 방식은 아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가야한다.
'전북판 나꼼수', 왜 원하시나요?
'전북판 나꼼수' 전라북도의 시사, 경제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는꼼수다' 형태로 직설적으로 풀어낸다는 뜻일게다. 사람들이 '나꼼수'를 통해 느꼈던 배설욕구, 카타르시스 등을 전라북도 이야기를 통해 또다시 느껴보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왜 '전북판 나꼼수'를 원하는가? 전라북도에는 인구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일간지 수(13개)를 가지고 있고, 방송3사, 뉴스 통신사, 인터넷신문까지 대단히 많은 언론들이 있다. 다양한 소식들이 하루에도 수백여건씩 전해지고 있다. 그토록 많은 언론과 기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나꼼수'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걸까.
'나꼼수'는 얼마전 정봉주 전 의원이 '백지연의 끝장토론'에서 나온 바와 같이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탄생했다"고 말한 바 있다. 다양한 신문, 방송 등이 있지만 권력에 의해 장악당해 제대로 된 언론 구실을 못해 자기들이 '셀프로' 만들었다는 방송이 바로 '나꼼수'다. '나꼼수'의 탄생배경은 그 자체가 유명무실한 언론의 현주소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전북판 나꼼수'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래서 씁쓸하다. 수많은 언론에 대해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꼼수'가 사람들에게 주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나꼼수'에 열광하는 포인트는 다양하지만 정 전 의원의 말처럼 그 탄생배경과 인기의 정점에는 '언론의 부재'라고 하는, 가장 큰 문제의식이자 우울한 지점이 자리하고 있다.
'전북판 나꼼수'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아이러니한 사실은, '전북판 나꼼수' 운운하는 사람들이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는 대부분 현직 언론인들이라는 것이다. 언론인들이 아닌 경우라면 정치인이었다. 최근 내년 총선을 바라보는 어느 예비후보가 선거전략으로 '나꼼수 같은 것'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사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나꼼수'의 후광을 등에 업고 '한번 떠보고 싶다'는 발상이거나 지역언론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낸 것이거나, 둘 중 하나다.
지역언론인들의 '나꼼수' 타령은 지역언론에 대한 종사자 스스로의 부정적 인식 혹은 체념의 산물이다. 스스로가 몸담고 있는 언론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인정이다. 그들의 말 뜻을 좋게 해석하자면 제도권 언론, 혹은 공공재로서의 방송이나 지면을 가진 이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 배출(욕이나 비속어 사용)이나 즉흥성에 대한 '부러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꼼수'가 현재 언론의 역할과 활동의 미약함, 혹은 비신뢰성에 대한 냉소와 비판을 깔고 누리는 인기라는 점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본다면 언론인들에게 나꼼수는 '부러움'보다는 '씁쓸함'으로 다가와야 옳지 않나 싶다.
'전북판 나꼼수'가 설마 성공할까요?
또 하나 냉정하게 되새겨봐야 할 이야기는 그 프로그램의 성공여부다. 매력적인 캐릭터, 획기적인 콘텐츠 유통방식, 기성 언론을 뛰어넘는 정보력 등 '전북판 나꼼수'가 만들어진다면 응당 갖춰야 할 요소들은 너무나 많다. 그리고 어렵다.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건 누구라도 알테다.
문제는 그러한 것들을 갖춘다 할 지언정 '나꼼수'만큼 성공하긴 너무나 어렵다는 점이다.
첫째, 매력적인 이야깃거리가 없다. '나꼼수'가 성공한 가장 첫째 비결 중 하나는 '적'이 너무나 명확하다는 점이다. 그들의 '적'은 오로지 '가카'다. '가카헌정방송'을 지향하는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좋건 싫건 알고 있는 '가카'를 공동의 적으로 삼아 콘텐츠의 청취대상을 '전국민'으로 확대할 수 있었다. 특정 세력이나 정당이 아니다. 오로지 '반 가카연대'를 유지했기 때문에 광범위한 청취자 및 영향력 확보가 가능했다. 그러나 전북엔 공통의 적이라 할만한 대상이 없다. 단지 '수장'이란 이유만으로 도지사를 적으로 삼기엔 그 이유가 타당치 못하고, 전북의 여당이라 할 수 있는 민주당 소속 도지사를 공격해 인기를 얻기란 결코 쉽지 않다.
둘째, 사람들은 전북에 관심이 없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일지 모른다. 사람들은 대체로 전북에 대해 관심이 없는 편이다. 자신의 이해득실과 관련된 부분이라면 모를까. 굳이 팟캐스트를 검색하고, 찾아서 다운로드해 듣는 열성적인 행동을 할만큼의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싶다. 특히 '나꼼수'의 주요 청취자 계층은 2030세대들은 지금 자신의 거주지 시장, 도지사 이름도 제대로 모른다. 오히려 서울시장이나 대통령에게 훨씬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지역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을 높이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지만 단지 누군가를 '까는' 음원을 통해 그것이 해결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다.
'전북판 나꼼수'는 부끄러운 말
'전북판 나꼼수'만들자는 이들에게서 굳이 희망을 찾아보자면 적어도 그런 것이 필요할만큼 우리 언론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졌다는 점이다. 문제의식을 가졌으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 것이 옳다. 그러나 '나꼼수'는 아니다. 아류로 성공하는 것은 원조로 성공하는 것보다 열배쯤 힘들 뿐더러 열배쯤 나은 것을 내놓아야 가능하다. ('나꼼수' 성공이후 '나꼽살' '명품수다' '너는 꼼수다' 등이 연이어 실패하는 것을 보라)
'전북판 나꼼수'는 부끄러운 말이다. 언론 스스로에 대한 푸념이자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현실의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려 나서지 않는 소극적 태도다. 새로운 것을 찾자. 그러나 '나꼼수' 방식은 아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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